[영화 후기/리뷰] 남한산성. 두개의 다른 신념이 살고자 하다.

안녕하세요. 작가 우주써니입니다.

추석 연휴 개봉작인 <남한산성>을 보고 왔는데요. 마치 김훈 작가의 원작을 눈 앞에서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전형적인 영화 연출이 아닌, 책을 따박따박 고대로 옮겨온 듯, 감성적인 부분은 최대한 자제하고 지극히 차분한 어조로 쓰여진 편이라, 저에게는 꽤나 새로운 영화 문법이었네요. 

영화의 소재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병자호란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칼을 쓰는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붓을 휘두르는 정치 세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정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총, 칼의 싸움만큼이나 날선 붓의 대결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대의를 앞세우며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끝까지 청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과 삶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고개를 숙여서라도 백성들과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각자의 언변을 명검처럼 휘두르며 저마다의 신념과 명분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충언을 아끼지 않는데요.

영화는 실재로 존재했을 법한 살아움직이는 캐릭터들을 장기말처럼 움직이며 역사적 선택 속에 얼마나 많은 고뇌들이 존재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른 가치와 신념을 가진 두 사람이 마지막 선택을 앞에 두고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 장면 전까진 왜 챕터까지 고대로 옮겨가며 책처럼 연출을 했을까 의문스러웠는데, 그제야 납득이 가더군요.

시종일관 정제된 톤으로 진행되던 영화가, 아무 움직임도 없이 그저 엎드려 있는 두 남자의 언쟁 속에서 날선 칼부림 만큼이나 서슬퍼런 긴장감과 묵직한 카운터를 날릴땐, 오! 탁월하다!란 느낌이 들었는데요. 각자의 신념만이 다를 뿐, 둘 다 나라를 위한 진심어린 충정이란 것이 느껴지는 순간, 옳고 그름은 사라지고 오로지 선택이란 것만이 덩그라니 길 잃은 미아처럼 남아버리더군요. 역사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완전하게 패배하는 스토리 속에서 역사적 선택을 해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선택 속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 등을 정제된 톤으로 보여주며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오락적인 재미가 있다기 보다는, 머리로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감성이 아닌 이성이 지배하는 듯한 영화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 보다는, 좋은 문장과 철학이 담긴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앞서 생경하다고 표현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데요.

저 같은 경우는 원작을 영화로 각색할 때는 더욱 영화스럽게 각색해야 한다는 것이 나름의 철학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른 시도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두 번 세번 이런 문법으로 쓰여진 영화가 있다면 과연 난 계속 재밌게 볼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와 더불어 책과 영화가 똑같다면 왜 굳이 영화화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네요. 

감성이 아닌 이성적인 눈으로 영화를 보게 만들고, 그래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 <남한산성> 제 별사탕 점수는요.

5별사탕 만점에 3.5 별사탕이구요.

전쟁영화나 오락영화를 기대하시는 분들이나,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하는 걸 중요시 하는 분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조금 지루하거나 재미없을 수도 있을 듯 하네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영화평이니 다른 리뷰도 참고하시고 관람여부 결정하세요.

공감과 구독을 눌러주신 여러분, 당신은 나에게 천사입니다.

감사합니다.